Outdoor Life/트레킹 or 하이킹

대구 [앞산] 하이킹

새론시저 2021. 8. 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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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6.


대구 출장중에 러닝 겸 하이킹으로 다녀온

앞산(658.7m)



대구에서 유명한 산으로 숙소와도 가까워서 러닝으로 출발.


계획은 안지랑골까지 가서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걸 생각했으나 같은 길을 왕복하는 걸 싫어하는지라 비파산 등산로를 선택했다.

비파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정비는 되지 않은 오솔길 수준의 길이긴 하지만 그리 험난하고 개척해야하는 산은 아니었다.


가끔 이렇게 대구시내가 보이는 탁트인 조망도 보이고


다시 이런 산길을 따라 오르락 오르락.
그리 경사가 높지는 않았으며 등산화 없이 러닝화를 신고 오르는데도 긴장은 했지만 미끄러지거나 힘든 산행은 아니었다.


비파산 정상으로 가는 도중에 만나게 된 통제구간.!!
왜 하필... 오늘은 7월 6일..
통제 시작일이 7월 5일....

통제구간

  • 2021년 07월 05일 ~ 2021년 12월
  • 안일사에서 올라와 왕굴, 마천각, 전망대 가는 길 중
  • 전망대 가는길부터 ~ 케이블카(산정휴게소)까지
  • 앞산 정상부터 ~ 케이블카(산정휴게소)까지
  • 왕굴 및 마천각 가는 길 중 마천각 가는길

전망대 철거 및 신축, 팔각정 개보수, 능운정 개보수
전망대 ~ 능운정 산책로 데크설치


험한 산에서도 스마트폰 연결이 문제가 없었는데 앞산은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구간이 좀 있었다...(부대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가????)


전망대로 가는 등산로가 통제되어 아쉬운 마음으로 천천히 하산 준비를 했다.


정비되지 않은 산길로 오다보니 길이 이렇게 막혀 있는 줄 몰랐다. 아무튼 안지랑골에서 오르다보면 전망대로 빠지는 길이 통제되었다고 보면 된다.


통일기원돌탑을 지나서 앞산 정상을 향해 올랐다.

통일기원돌탑은 1970~2003년 동안 조국의 남북통일을 기원하면서 쌓았다. 돌탑의 돌들는 인근의 야추(너덜지대)에서 가져온 것이다. 규모는 높이 23m, 둘레 75m로 15t 트럭 528대분의 돌이 사용되었으며,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것으로 추정된다.

(누군가가 손수 쌓은 것 같은데 왜 이름이 지워졌을까~???)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왕굴에 도착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공산전투(927년)에서 대패하여 죽을 위기에 빠졌을 때 신숭겸 장군의 지략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피신한 적이 있었다. 반야월을 거쳐 이것 비슬산(앞산)으로 피신하여 인근의 은적사에서 3일 동안 머물다가 이 동굴 속에 숨어 있을 때였다.
왕건을 쫓는 견훤의 군사들이 근처에 이르자 갑자기 운해가 가득하고 동굴 입구에는 거미줄이 쳐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깊지 않은 동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견훤의 군사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위기를 무사히 넘긴 왕건은 훗날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왕이 머물렀던 동굴이라고 하여 왕굴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큰 동굴이라하여 생긴 왕굴이 아니라 왕이 머물렀던 동굴이라하여 왕굴이라는 것이 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


왕굴에서 조금 올라가면 탁트인 전망대가 나오는데
구름이 얕게 끼어 있어 도시가 구름(or 안개)에 뒤덥혀 조금은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줄을 잡고 바위를 타고 조금 오르고 약간 험해보이는 등로를 따라 오르면


드디어~
앞산(658.7m)에 도착한다.

 


산에 정상에 오름과 동시에 눈을 좌우로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산세가 아름답다.

 


대구 시내가 구름 층에 가려졌다.
이야~~ 느낌 좋다~ 좋아~


지도상으로 봐도 좀 좁아보이는 등산로라 그런지 길이 좀 험했다. 길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경사가 있는 곳도 있고 돌길, 풀숲이 우거진 길등 쉬운 길은 아니었다.

가는 도중에 목덜미가 엄청 따끔했는데 아마 쐐기에 쏘인듯 했다. 엄청 따끔거려서 순간 놀람.ㅋㅋㅋ


다시 정비된 등산로에 접하고 하산을 한다.

 

안일사는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패하여 이곳에 3개월 동안 편안하게 있었다고 해서 사찰 이름을 안일암이라 했다고 한다.
1915년 음력 1월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등 13명이 이것에서 목숨을 바쳐 국권회복운동을 할 것을 서약하고, 비밀결사인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하였으며, 1919년 3.1 독립운동 뒤에는 상해임시 정부를 돕기 위하여 군자금 조달운동이 벌어졌으며, 3.1 독립운동 때 3.1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 중 1명인 용성스님이 사찰을 중창하고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등 일제강점기 하에 항일운동의 중심이 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거의 내려와서 보니 앞산 전망대와 주상절리를 보지 못해 좀 아쉽다.


이제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내려가는 길이야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아마 오랐을 때는 엄청 힘든 길로 보인다.
뒤로 내려가는 분들도 많이 보이더라.


등산로 입구까지 잘 도착하고 에어건으로 몸을 털어주고 다시 러닝으로


아마도 저 멀리 보이는게 비파산 전망대인 듯하다. 즐겁게 러닝&하이킹을 마친다.

언제 한 번 더 와 볼지 모르는 대구...
출장중에 시간이 나서 앞산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등산화가 없었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2시간의 산행을 안전하게 복귀했다.

모든것에 항상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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