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door Life/트레킹 or 하이킹

싸목싸목 유달산 둘러보기

새론시저 2023. 1. 2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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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유달산


유달산 노적봉 주차장에서 목포항이 보이는 곳.
목포를 자기만의 느낌으로 마음껏 담아 볼 수 있는 곳이다.

노적봉
유달산 입구에서 왼쪽으로 보면 기괴한 바위 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해발 60미터의 바위산인 노적봉이다. 원래 유달산의 한 봉우리였다고 하는데 일정감정시기에 일본인 거주지와 구 시가지를 연결하기 위한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적봉은 일등바위의 능선에서 떨어져 나와 섬처럼 외로이 남게 되었다.
전해오는 말로는 일본인들이 유달산에서 내리 뻗은 노적봉의 맥을 끊기 위해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노적봉은 큰바위얼굴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노적봉을 시작으로 유달산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싸목싸목 오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어릴 때 이순신 동상 앞에서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이 어디 있을 텐데..



그 건너로 보이는 노적봉.
얼굴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ㅎㅎ

노적봉
정유재란 때 12척의 배로 불가능해 보였던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동안 조선의 군사와 군량미는 턱없이 부족하여 바로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함락 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때 노적봉은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유달산 앞바다에 왜적의 배가 진을 치고 조선군의 정세를 살피고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은 노적봉을 이용하여 위장 전술을 펼쳤다.
노적봉 바위를 이엉(볏짚)으로 덮어 마치 군량미가 산처럼 많이 보이게 하고 새벽에 바닷물에 백토를 풀어 밥 짓는 쌀뜨물처럼 보이게 하여 왜군들이 군사가 많은 줄 알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로 이 봉우리를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학루
유달산의 제일 아래 부분에 있으며 1984년에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세워졌다. 대학루는 '학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달산 누정 중에 삼학도와 가장 가까워서 삼학도를 가까이 볼 수 있다.


학을 기다린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 ‘대학루’
그리고 세 마리의 학이 섬이 되었다는 전설로 붙여진 이름 삼학도가 있어 목포 시조는 학이다. 그래서 학과 관련 있게 붙여진 이름인 듯..



멋있다는 말밖에는..


정말 일본노무시끼들은 이름만 들어도 지렸을듯...



안개가 낀 목포 시내.
오포대를 지나니 안개가 짙어졌다.

잘 봐야 보이는 노적봉 뒤 새천년 시민의 종.


왼쪽이 새천년 시민의 종,
오른쪽이 대학루.


얼마 후면 개나리도 피겠지.
근데 지금 겨울은 너무 춥다.

영하 10도를 왔다갔다하니...

달선각
유달산 입구에서 유선각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중간에 쉬어 가라고 1959년 세워진 것이다. '달선각'의 이름은 통달할 달자와 신선 선자를 쓴다. 유달산 현세가 풍수적으로 '선인무수형국' 이라 신선이 춤추는 모양이라고 한다.
그와 관련하여 이해해 보면 되겠다.
달선각에는 바닥에 방위를 나타내는 나침반이 그려져 있는 게 특징이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짐작하여 목포 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곳이다. 꼬불꼬불한 유달산 일주도로를 볼 수 있고,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역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달선각을 지나면 나오는 오포대.

목포의 오포대
오포는 오정포라고도 하는데 1908년(융희 2년) 4월 1일 당시 일본통감부가 한국과 일본의 1시간 시차를 무시하고 오전 11시에 일본 시간 정오 12시에 맞춰 정오로 정하고 포를 쏘아 알린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목포의 오포는 1909년 4월에 개시되었다. 최초의 오포는 조선식 선입포 [화약과 포탄을 앞에서 넣고 심지를 꽂은 다음 불을 붙여 발사하는 식]로 경기도 광주로부터 이송해다가 측후소 바로 위 각국 거류지계 표석 근처에서 제일성을 울렸다. 이 포는 조선조 현종 10년 서기 1669년에 제조된 것으로 기록에 의하면 1회 발사하는데 화약 30량이 소모되며, 발포할 때마다 뒤로 밀려가는 구식이었기 때문에 1913년 8월 일본 오사카포병 공장에서 당시 가격 160원 하는 야포를 구입하여 후에 사이렌이 그 역할을 대신할 때까지 사용했으며, 그전에 있었던 조선식 대포는 당시 동명동에 있던 송도신사 경내로 옮겼다.'고 한다. 일제말기에 일본이 공출로 거둬가 버린 것을 1988년 12월 26일 현재 자리에 복원하였다. 전라남도에서는 1986년 11월 유달산 오포대를 지방 문화재 자료 제138호로 지정하였다.



약간의 안개가 유달산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유선각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긴 곳이라 하여 무정 정만조 선생이 이 누각의 이름을 유선각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1932년 10월 1일에 건립된 유선각은 원래 목조 건물로 전통적인 우리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었는데, 태풍으로 무너져 중건했으나, 또 다시 풍파로 인하여 퇴락하자,
1973년 8월 1일 옛모습 그대로 개축한 것이 현재의 유선각이다. 앞뜰 암반 위에는 유선각 표비가 세워져 있다. 표비석에는 "흰 구름이 쉬어 가는 곳입니다. 세 마리의 학이 고이 잠든 푸른 바다의 속삭임을 새벽 별과 함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라는 아름다운 글귀가 새겨져 있어 이곳 정취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목포예총의 산파 로 불렸던 고 차재석 선생의 글이다. 누각 내부에 들어서면 독립운동가이자 광복 후 한국정치계의 거물이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이 쓴 유선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1951년에 신익희 선생이 목포의 갑부 정병조를 만나기 위해 목포에 왔다가 유달산 유선각에 들러 기념으로 이 글씨를 남겼다고 한다.


정병조는 자신의 말목을 세워 유달산을 세번이나 팔아먹었다고 하기도 하지만 뭐 좀 찾아보면 미화된 게 많아 보이는 친일 앞잡이에 사리사욕만을 챙겼던 기회주의자 였던 것 같다.


안개로 인해 이슬을 한껏 품고 있다.


이제 앞이 보이지 않아 목포시내를 느낄 수 없다.

애기바위(두 엄씨 바위)
관운각 맞은편에 있는 바위로 '애기바위', '큰 엄씨, 작은 엄씨 바위"라고도 한다. 높이 솟아 있는 두 개의 바위 주변에는 여러 개의 바위들이 널려 있으며 조금 아래의 남쪽에는 몇 개의 벤치가 있다. 큰 엄씨가 애기를 업고 작은 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작은 엄씨도 애기를 업었는데 큰 엄씨를 보려고 하는 형상이다. 이곳은 마당바위로 오르는 능선이 남동쪽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어 두 엄씨는 거센 바다 바람을 등지고 애처롭게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내려다보면 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애기바위 바로 위로 목포해상케이블카가 지난다.
안개로 인해 케이블카를 타는 게 무의미해 보인다.

관운각
일등봉 아래에 있는 누각으로 유달산의 누정 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관운각은 명칭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비가 온 후 안개가 끼면 산허리에 구름이 머물러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곳에 세워져 있어 볼 관(觀)에 구름 운(雲)을 써서 '관운각'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하고 추측한다.
관운각에서는 목포항 입구에 길게 용처럼 꿈틀거리는 고하도가 잘 보인다.


마당바위로 가는 마지막 계단.

마당바위
어른 10명이 앉아서 쉴 정도의 마당같이 넓은 바위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당바위로 오르는 길은 계단을 만들기 힘들어 바위의 능선을 계단모양으로 깎아 내고 시멘트를 발라 만들었다. 마당바위 맞은편에는 일등봉 전면이 보이고 중앙에 손가락바위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로 일등봉을 오를 수 없어 다시 관운각까지 돌아가야 한다. 이 바위 근처에서 봉화불을 피웠을 가능성이 많다고 전한다.


마당바위를 찍었어야 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망연자실하다보니 바위고 뭐고 아쉬운 마음을 접고 돌아서 버렸다.


내려가는 중에 아쉬워서..
가지 끝에 맺힌 물방울 봉우리가 예쁘다.


일등바위로 가려면 관운각에서 표지판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된다.


데크로 길이 놓여져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를수 있다.

일등바위
유달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울뚝뚝한 바위들이 뒤엉켜 웅장한 모습을 만들어 낸다.
마당바위에서 다시 내려와 관운각 아래에 있는 길을 가다보면 일등바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일등바위를 바라보면 살아 움직일 듯한 바위들의 웅장함을 더욱 느낄 수 있다. 오랜 옛날 사람이 죽으면 이 일등바위(율동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이동바위)로 옮겨져 대기하고 있다가,  극락세계로 가는 영혼은 3마리의 학(삼학도)이나 고하도 용머리의 용을 타고가고, 용궁으로 가는 영혼은 영탈산 (유달산)에서 조금 떨어진 거북섬(목포와 압해도 사이에 있는 섬)에 있는 거북이 등에 실려 용궁으로 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일등바위에서 목포 앞바다와 다도해를 보는 풍경이 멋진데.. 아쉽다.


하산을 할때까지 안개는 거치지 않았다.


동백꽃 한 송이..


다시 목포항이 눈에 보이고.


삼학도도 눈에 들어온다.


대학루.


올려다 보니 달선각이 보인다.


색이 옅지만 알록달록,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보리마당 마을.


자세히 보면 새천년 시민의 종이 보인다.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는 228m로 높지 않아 싸목싸목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안개로 인해 목포항과 다도해 풍경을 즐기진 못한 게 아쉽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일등, 이등, 삼등바위 등을 돌아보며 여유를 즐기고 싶다.



각각의 누각의 내용들은 목포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천천히 걸음하면서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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