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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을 넘어 등급을 매길 수 없는 무등! [무등산] (도원마을-규봉암-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중머리재-장불재-도원마을)

새론시저 2023. 2. 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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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은 무등산으로 정했다.

도원마을(화순) - 규봉암 - 장불재 - 입석대 - 서석대 - 중봉 - 중머리재 - 장불재 - 도원마을
무등산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하였다.
광주·전남의 진산(鎭山)이자 호남정맥의 중심 산줄기로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으며 2013년 3월, 우리나라의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면적은 75.425㎢이다.
해발 1,187m의 무등산은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고귀한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석대·입석대·광석대 등 수직 절리상의 암석이 석책을 두른 듯 치솟아 장관을 이룬다.
북쪽은 나주평야, 남쪽은 남령산지의 경계에 있으며 산세가 웅대하다. 북부는 중생대에 관입(貫入)한 화강암이 분포하고 남부는 퇴적암지대이다. 대부분 완만한 흙산이며 중턱에는 커다란 조약돌들이 약 2km에 걸쳐 깔려 있는데 이것을 지공너덜이라고 한다.
유적으로는 증심사, 원효사 등의 사찰과 석조여래좌상(보물 600)을 소장하고 있는 약사암, 천문사, 미력사 등의 암자가 있다.
정상 가까이에는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경치가 뛰어나다. 동쪽 경사면에서 정상을 향하여 입석대, 서석대, 삼존석, 규봉암 등이 있고 정상 부근에는 수신대가 있다. 산의 북쪽 기슭인 충효동에는 환벽당, 소쇄원, 식영정 등의 누정이 세워져 있다.


이른 아침에 화순 도원마을 쉼터에 차를 주차하고 도원탐방지원센터를 시작으로 서석대를 향해 올랐다.

 

무등산 입산시간
하절기(3~11월) 04:00 ~ 17:00
동절기(12~2월) 04:00 ~ 16:00

 


규봉암 구간은 임도와 나무계단, 돌계단으로 등산로는 어느정도 잘 정비되어 있지만 규봉암까지 꽤 경사가 있어 그리 쉽지 않은 구간이다.


끝없이 오르는 나무계단.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헐떡거리면서도 잘 정비해준 덕분으로 그래도 편히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누군가의 수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편함이 된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장불재와 규봉암 방향으로 싸목싸목 숨을 고르며 걸었다.



너덜길도 지나고


산 속 임도라 조망은 그리 볼 수는 없지만 살짝씩 보이는 화순방향을 돌아보며 갈 수도 있다.


여기가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규봉암이다.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다.
파릇파릇 생기 넘치는 봄도 아니고
푸름름이 가득한 여름도 아니고
단풍이 지는 가을도 아니고
소복소복 눈 쌓인 겨울도 아닌...

그냥 그저 그런 겨울에 온 게 좀 아쉽다.


그래도 무등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저기 보이는 녹색 동그란 입구로 들어가면 규봉암으로 들어갈 수 있다.



종루라고 해야 하나? (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겠으나) 법당에서 새벽녘에 종소리가 아득히 울려 퍼지는 곳인데 소리가 울려 퍼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많이 낡아서 혹시 올라가게 되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다.


입구 바로 앞 암벽에는 무언가 가득 적혀 있다.
그리고 위쪽 사이에 꽉끼어 있는 돌.


규봉암으로 들어서니 병품처럼 둘러쳐져 있는 주상절리대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곳이 규봉암이구나.!

무등산을 그리 많이 오르지는 못했지만 여러 구간이 있어 좋은데 규봉암 구간 이렇게 멋진 구간인지 왜 이제야 알았을까?


규봉암의 유명함은 규봉암을 둘러쌓고 있는 광석대의 주상절리대 때문이라 한다.


이 곳이 광석대.


광석대는 지공너덜과 함께 문화재 명승 제1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의 3대 주상절리대다.
규봉 주상절리대는 높이는 30~40m이고, 최대 너비는 약 7m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볼 수 없는 규모이고, 구성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불리는 화산암이다.

정말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치 굳걷하게 쌓아 올려진 성벽처럼 둘러쳐져 있는 반듯한 돌들을 보며 어찌 이렇게 멋진 곳에 세워졌을까 감탄하게 된다.


우뚝 우뚝 솟아있는 주상절리 앞으로 보이는 암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레고의 조각처럼 느껴졌다.


앞으로는 이렇게 화순이 바라다 보이고 산끝의 능선들이 또렷하게 보이니 한 폭의 그림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경치에 다시 한번 더 놀랜다.

이래서 규봉암, 규봉암 하는구나.


멋진 풍광에 내 눈을 깨끗하게 씻게하고 규봉암을 돌아보며 나왔다.


규봉암을 나서면 다음은 지공너덜과 석불암이다.
규봉암 구간은 도원탐방지원센터부터 규봉암까지만 가게 되면 그 후로는 큰 어려움이 없는 구간이다.


큰 바위를 돌아가기도 하고


잘 정비해 둔 너덜길을 가기도 하지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곳에 도착해 있다.


이곳이 지공너덜 바로 전에 있는 곳으로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에게 설법을 들었던 라옹선사가 석실을 만들고 좌선수도 했던 곳이다.


앞으로 보이는 풍광을 통해 마음의 평안이 찾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석실내부에는 다른 많은 분들의 염원도 담겨 있어 보인다.

지공너덜은 무등산 정상 아래, 해발고도 약 1,000m~1,100m 사이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며, 폭 150m에 이르고 상부 경계가 아래로 들어간 혀 모양의 형태로 발달되어 있다. 너덜의 평균 경사는 20~35도이며, 너덜을 구성하는 암괴의 크기는 최대 4~5M에 이른다.


하트 모양으로 찍힌 지공너덜이 참 인상적이다.


지공너덜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석불암에 도착한다.

석불암 마애 여래 좌상은 우측 명문에 1933년 전라남도 담양군 사람인 국영현(鞠榮鉉) 일가의 발원으로 석공 이삼채(李三采)가 참여했다고 하여 정확한 조성 연대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좌측 명문에는 국상현(鞠相鉉) 일가의 발원으로 1935년 소림정사(小林精舍)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곳이 본래 소림정사였음을 알 수 있다. 소림정사는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 석불암 마애 여래 좌상은 현재 석불암 법당 뒤 석조 불감 안에 안치되어 있으며, 크기는 98㎝이다. 2007년 1월 5일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2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석불암 앞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돌탑들이 세워져 있다.


석불암은 작은 암자로 규봉암에 비하면 규모가 정말 작다.

멀리서 되돌아보니 산 속에 있는 작은 가정집처럼 보인다.


서서히 보이는 입석대와 서석대.
오른쪽이 입석대이고 왼쪽이 서석대다.


장불재 쉼터에 도착.
이제 한 숨을 좀 돌린다.

장불재는 동국문헌비고에는 장불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장불동이라 적혀 있다. 용추계곡의 긴 골짜기를 '긴골' 즉 '장(長)골'로 부르고 그 골 위에 있는 고개라 하여 '장골재'라 부르던 것을 '장불사'가 생기면서 장불치라 써 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옛날 이 고개는 화순 이서, 동복, 사람들이 광주를 오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했던 지름길이었다.
지금은 서석대, 광석대, 안양산, 중머리재 등을 이어주는 중심지이고, 광주광역시의 전경과 무등산 정상부의 주경관인 주상절리대(입석대, 서석대)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또한, 이곳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최초로 무등산에 올라 산상연설을 했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장불재에서 입석대와 서석대를 뒤로 많은 산객들이 사진을 찍는다.

이곳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산상연설을 한 곳이기도 하다.

좀 더 멀리 봐 주십시오. 역사란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보면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과 대의를 좇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눈앞의 이익이 이익입니다.
2007년 5월 19일 노무현대통령 장불재 산상연설문 '시민민주주의의 전망' 중

 


잠깐 둘러보다가 입석대를 향해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좀 전에 올랐던 규봉암 구간에 비하면 큰 어려움은 없는 구간이다.

 

입석대는 무등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해발고도 약 950m에 위치하며, 서석대(1,050m)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465호인 무등산주상절리대에 속한다. 주상절리대는 약 120여 미터 동서로 줄지어 선 40여 개의 너비 1~2m의 다각형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상절리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 훅(약 8,700~8,500만 년 전)에 분출된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불리는 화산암이다. 입석대의 상부에는 승천암이라 불리는 주상기둥이 옆으로 기울어져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양을 가진 독특한 형태의 바위가 있다.

 


입석대를 지나 이제 서석대로 향했다.


오르다 힘들다고 생각되면 돌아봐도 좋다.
무조건 앞으로 올라 정상을 보는 것도 좋지만 약간만 고개를 돌려도 멋진 풍광에 마음이 편안해져 잠깐의 숨고르기로 에너지를 다시 채울 수 있다.


주상절리대 참 특이하다.
양 손을 펼쳐 놓은 것 같다.


미끄러져 하늘로 올라갈 것 같은 승천암.


서서히 정상이 보인다.


승천암에서 바라보는 백마능선.

백마능선은 해발 800~900m 사이의 2.5km 대규모 능선으로, 백마의 잔등모양 지형 위 억새의 모습이 백마의 갈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 이 길은 호남정맥 길로 큰 경사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장불재를 시작으로 능선을 따라 낙타봉을 거쳐 안양산 정산으로 이어지며, 봄철에는 철쭉군락이 능선구간을 빨갛게 물들이고 가을철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드디어~
서석대에 도착.!!

여기서 앉아 쉬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배를 밥으로 채웠다. 몸이 고생했으니 컵라면으로 채우기는 좀 그렇고 해서 항상 밥으로..
난 밥심으로 산다.ㅎㅎㅎ

 


잠깐 쉬니 이내 몸이 추워졌다.
하산 채비를 하고 중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무등산의 중상절리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700~8,500만 년 전)에 화산폭발 시 분출된 화산재가 퇴적되어 형성된 무등산 응회암이 지표에서 천천히 냉각되면서 수축에 의해 발달된 지질구조이다. 이러한 주상절리가 발달된 무등산응회암이 오랜 시간이 지나 풍황에 의해 지표에 노출되면서 무등산 주상절리대가 만들어졌다. 무등산응회암은 2회 이상의 화산불출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규봉 주상절리대에 있는 주상절리는 돌기동의 너비비가 약 7m에 이르는 세계적인 규모이다. 서석대와 입석대로 구성된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무등산이 광주를 품 듯 시가지의 전경과 멀리 월출산을 조망할 수 있고 해질녘 서석대에 비치는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입석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다.

가닥가닥 붙여 놓은 듯한 서석대.
여기 무등산이 아니면 이런 장관을 어디가서 볼 수 있을까?


저기 보이는 중봉을 향해..


저번에도 왔던 길이지만 휘어져 있는 이 길이 좋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서석대.


오른쪽 방향은 원효사(동화사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구간.


아래로 내려가면 중머리재로 향하는 구간이다.


안내판에서 보는 것처럼 중봉에서 중머리재의 구간은 경사가 상당하다.
내겐 내려가는 구간이지만 오르는 산객들의 모습에서는 거친 숨은 물론 땀을 계속 닦고 있었다.
가끔은 너무 경사가 있어 내가 다 한숨이...


중머리재에 도착. 그리고 쉼터.


올려다 본 왼쪽 솟아 있는 곳이 입석대 쪽.
오른쪽 큰 안테나가 있는 곳이 장불재.


중머리재에서 장불재 구간은 어렵지는 않은 구간이지만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다시 도착한 장불재.
다음엔 만연산과 안양산과도 연계 산행을 해봐야 겠다.


장불재에서 도원마을로 내려가면서 다시 한번 서석대와 입석대를 올려다봤다.

항상 하산하는 시간이 되면 아쉬움에 돌아다보게 된다.

 


도원마을에서 광주 방면 버스 시간표를 붙여 놨다.
자차를 이용하지 않은 산객들에게는 좋은 정보 같다.
(사진은 도원탐방지원센터의 시간표)


하산할 때는 규봉암 구간이 아닌 도원명품마을 구간으로 바로 내려갔다.
빠른 길은 아니지만 같은 길을 다니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다 보니 다른 구간이 가능하다면 다른 길을 선택한다.


옛 도원마을 길로 예전엔 이 길이 장불재를 올랐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사용치 않아서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린다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옛 도원마을 길
장불재로 넘어가는 이 길은 과거엔 화순에서 광주로 가는 유일한 무등산 길목있다. 한 때는 이 길로 100여 가구가 넘는 마을(옛 장복동 마을)이 들어섰고, 오가는 과객들로 마을 주막은 항상 북적거렸다고 한다.
6.25 이후 현재는 돌담과 집터만이 홀로 남아 지나는 탐방객을 반기고 있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지나던 길이라 주막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집터만이 남아 있어 꽤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을 거라 추정하고 있다.

 

도원마을은 무등산 동남쪽 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300여 년 전 유배를 온 남씨와 문씨가 이곳의 경치가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워 도원이라 부르고 마을을 이루었다. 많은 주막과 쉼터가 있었으며 6.25전란을 거치면서 마을 사람들이 중장복마을로 이주해 지금의 도원마을이 되었다.

 


원점인 도원탐방지원센터에 도착.

 


저 멋진 곳을 얼마 전에 다녀왔다.


도원명품마을이 귀여운 지도로 표현되어 있다.


도원마을 쉼터에 도착.
아쉽게도 쉼터의 너른 공간에는 주차를 할 수 없도록 입구가 막혀 있어서 앞 다른 공간에 최대한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주차를 했다.


규봉암과 광석재를 최대로 끌어당겨 봤다.
비록 하늘은 청명하지 않았지만 무등산을 다녀오면서 마음이 깨끗이 정화된 느낌이었다.

무등산에 여러 구간이 있어 갈 때마다 다른 코스가 있어 새로운 산을 오르는 느낌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무등산의 정상인 천황봉에 오를 날이 있을 것 같다.

평등을 넘어 무등으로!!
이름마저 정말 멋진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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